가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가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김재출
  • 승인 2012.10.09 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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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한 편의 시

〔 기고 // 김 재출 목사〕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한 편의 시가 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시인은 차를 매우 좋아하여 그 호를 다형(茶兄)이라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강단에서 시를 노래하다 오랜 지병으로 쓰러졌다.

그의 시처럼, 마르고 검게 타버린 까마귀처럼, 그렇게 그는 마지막 길을 갔다.

 

백과사전에서는 가을을 이렇게 정의한다.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기온이 점차 떨어지는 계절”

달리 표현하면 가을은 여름이 사라지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 있는 시간이다.

 

누구나 인생의 여름은 있다.

모든 것이 밖으로 향하여 나를 극대화 시키고 싶은 욕망의 시간

그러나 정작 나의 내면은 텅 비어 있음을 모르는 상실의 시간이다

 

누구나 인생의 여름은 있다

숲이 우거져 늘 푸르름에 넘쳐 있을 것 같은 오만의 시간

그러나 정작 나의 내면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메말라 버린 상실의 시간이다 

 

그 여름이 지나 불현듯 겨울이 오면

우리는 한그루 나목(裸木)처럼 혼자 남아

텅 비어 있는 앙상한 인생의 겨울을 맞을 것이다 

 

그래서 신은 여름과 겨울 사이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는 가을을 주셨나보다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이제, 여름은 가고 우리에게 가을의 시간이 왔다

나에게로 향하는 질문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

이 가을,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내 영혼의 또 다른 풍성함이 있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도 나의 사랑이 넘치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내가 있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이 가을을 채우게 하소서

 

- 가을의 시인, 김현승 시인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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