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인 - Human&Books
우리는 일상을 어떤 느낌으로 보낼까? 어떤 이는 인생을 버티어 낸다고 하고, 어떤 이는 하루가 너무나 짧을 정도라고도 한다. 같은 일상이라도 이를 맞는 개인의 형편과 시각에 따라 각자 다르게 체감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인간은 삶을 영위하는 존재라고 하는데, 마냥 무의미하게 보내라고 주어진 인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또 우리는 어디에서 감동을 받는가? 황동규 시인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사소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조하고 들춰본다. 고루한 시간의 파고를 비켜갈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그는 글로 말하지만 이미 눈으로 느꼈다. 무엇보다 그는 느낀 바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졌다. 그의 언어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본질적 감성’을 에누리 없이 질러간다.
누가 몰래 다녀갔을 때
어젯밤 누군가 담 넘어와
마당에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추억 속의 뜨락처럼
소리 없이 문이 열려 있다
담장에 세워 둔 비 집어들고
담에서 채 기어 내려오지 못하고 걸려 있는
마른 담쟁이 줄기를 바라본다
이상하다
뒤꼍에 숨어 있는 옆집 강아지가 마음속에 보인다
그의 젖은 새카만 콧등
눈 위의 발자국을 비로 쓸어낸다
풍장 27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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