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12동리) 역사박물관”이 필요하다 !!
“삼일(12동리) 역사박물관”이 필요하다 !!
  • 윤문칠
  • 승인 2020.12.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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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문칠의 여수돋보기]

 삼국시대부터 육로보다는 해로가 발달된 시대 백제에서 일본으로 가는 항로가 낙포(진례)포구에서 하동포구로 이어져 남해로 연결된 최단의 해상통로였다. 그래서 여수시 삼일 면은 12동리 12개 섬을 가진 큰 역사의 질곡을 품에 안은 땅으로 삼일포(낙포)는 여수반도의 중심지인 본향이었다. 그리고 영취산(진례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교려 명종25) 북동쪽 아래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흥국사는 성황신 김총의 성지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시에는 승병 수군의 본거지가 되어 호남지역 의병과 승병들의 항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유서 깊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종결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시 왜적을 물리쳤던 조선 전선(戰船) 함대를 배치하여 군선을 수리하였던 배무시(조선소)가 있는 삼일포에는 조선포낙포 하촌 함구미광양 포묘도읍포 마을을 중심으로 방어 도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고려 충신 공은의 묘와 낙영재(樂英齋), 아천정(鵝川亭), 공은 선생을 모신 사당인 여일재(麗一齋), 흥학비(興學碑), 1890년경에 건립된 서당 아천재 터 등 많은 문화유산과 유적지가 있었다.

삼일 면 상암 북쪽에 있는 까치산(223m) 능선을 경계로 남쪽은 신덕, 남서쪽은 상암동과 접해 있고, 서쪽은 진례산(영취산)을 경계로 중흥월내동에 접하고 서쪽이 광양만, 서쪽으로 상암천(上岩川)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 광양만으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낙포 중심에 제석산(帝釋山,336.4m)이 자리하고, 남북으로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남쪽 상촌은 밀양 박씨, 북쪽 하촌은 경주 최씨, 함구미 마을은 함안 조씨, 사포마을은 의령 남씨 등 자연마을마다 각각 다른 성을 가진 주민들이 처음 정착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부모 형제가 살던 12동리는 월하평여중흥적량월내낙포호명신덕상암자내묘도화치 마을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던 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우리 동네 옛 이름이다. 그런데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우리들의 배움터였던 삼일중학교와 중흥월내화치묘도 초 폐교와 마을철거로 세계적 고귀한 선사시대의 문화유산과 유적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중흥지구 흥국사 계곡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저수지 주변을 녹지공원으로 조성하여 삼일 면 사람들의 망향 민과 실향민을 위해 망향 추모탑, 산업 기념비, 역사산업향토홍보관 등을 갖춘 역사 근린공원이 있어야한다고 필자는 기고(‘13.4.8)하였다.

여수시 삼일 면 일대는 전국 최초 민간인 정유회사인 산업 석유화학 단지인 호남정유회사(GS칼텍스)의 입지로 시작된 국가 산업 단지가 제3공화국(70)시절부터 230여개가동 업체 중 만 8천여 고용 인원이 근무하는 단지로 조성되었다. 삼일 면 사람들은 국가의 산업화를 위해 국가 공단 설립의 대승적 결단으로 수백 년 동안 함께 해온 정든 고장을 모두 내어주고 이주하며 실향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는 추억이 아니라 기록이 필요할 때다.

먼 훗날 고향을 잃었던 후손들이 찾아와 우리고향에 대해 묻는다면 옛 흔적은 없지만 함께한 조상이 묻힌 땅이 있고 풍습이 있던 이곳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지명이지만 옛 지역의 마을에서 나온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지키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여수 산단 근린공원 및 삼일(12동리)역사박물관을 건립해 주기를 건의하고 싶다. 아름다운 해양관광 휴양도시 여수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202012

) 전라남도 민선 교육의원 윤문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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