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소설읽기"
"아~ 나의 소설읽기"
  • 심재민
  • 승인 2020.10.10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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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은 우리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소설은 우리로 역사를 살게 한다’

 어느 베스트셀러 중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설을 읽지 말라고 충고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 아버지는 굳이 흥미로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차라리 역사책을 집으라고 권한다. 그 글을 쓴 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이는 최근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와 같기 때문이다.

소설을 극히 싫어하던 내가 그것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은 오로지 어학 연습을 위해서였다. 외국어전문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도통 외국어를 마스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을 때였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은사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수필을 읽으라는 조언을 주셨다.

어떤 수필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께서 일본인 선원들에게서 받으셨다는 소설 두 권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수필에는 대화나 이어지는 내용은 없지만,  짧은 글마다 다양한 소재들이 넘쳐나서 어휘 공부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소설은 수필과는 다르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일관된 스토리가 있다. 중간 중간에는 배경을 묘사하는 수필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재미도 있고, 어학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소설 읽기! 나의 소설 읽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권 두 권 독서량이 늘면서 어학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렇지만 소설은 여전히 내게 토익 토플처럼 어학 공부를 위한 교재일 뿐, 내 삶과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 못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은 소설이 있었다. 바로 후지타세츠코백년의 사랑이다. 최고의 명문학교 출신에 늘씬하고 대기업이사인 아내, 그저 그런 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글을 쓰는 남편. 누가 봐도 난해한 조합이다. 그리고, 전개되는 사건들. 그 속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연들. 그 소설을 통해, 나는 단지 재미있었다가 아닌, 내 안에 있던,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고, 그러면서, 큰 반성으로까지 이어졌다. 소설이 내 생각과 삶을 바꿨던 첫 경험이었다.

카네시로카즈키의 소설 ‘GO’에 나오는 대화이다.

나는 유망기라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너는 소설만 읽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소설의 힘을 믿고 있지 않았다. 소설은 그저 재미있을 뿐,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책을 열고 닫으면 그것으로 끝.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정일이는 항상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고 있는 인간은 집회에 모여있는 백 명의 인간에게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둥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늘면, 세상은 좋아진다.”라고 계속해서 사람좋은 미소를 띠는 거다.

소설 속 등장인물 정일이의 유언 같은 이 대사는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소설에는 진정 그런 힘이 있는 것일까?

얼마전, 미국인 작가 크리스틴 해너의 소설 더 나이팅게일을 읽었다. 2차대전 중 너무나 빠르게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시험공부를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대해 암기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그것에 대해 궁금하게 여겨 본 적이 없다. ‘더 나이팅게일은 그 당시의 일들을 세세히 알려준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책은 우리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소설은 우리로 역사를 살게 한다소설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를 주관적 체험이 가능한 나의 경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하고, 손에 땀을 쥐며 긴장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일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의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넓어지고, 깊게 된다. 일명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란 그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하게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과 아픔과 기쁨과 만족에 동참하는 경험이 극히 드물다면, 누구라도 소시오패스화 되지 않을까?

순위를 매기기 위한 단순암기식 교육현장, 학교와 학원을 맴돌며 시험문제만 풀어대는 청소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생존경쟁 속에 사는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삶의 여러 복잡한 문제 해결 방법 중 핵심은 객관적인 시야이다. 자신의 문제에만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객관성을 부여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이성적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동질성과 안도감을 갖게 한다.

소설 ‘GO’ 속 정일이의 알송달송 알 듯 모를 듯 했던, 그 말을 근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달아 가는 느낌이다.

[심재민 어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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