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특별법 기획] 여순사건 그때를 되돌아본다(15)
[여순사건특별법 기획] 여순사건 그때를 되돌아본다(15)
  • 김충석
  • 승인 2020.09.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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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3기, 5기 여수시장

16, 14연대반란사건 정부에서 여순반란사건으로

처음에는 여수 14연대반란사건이라 하였으나, 진압이 된 뒤에 건국 초에 군사반란이란 국가의 명예 문제라고 여수순천반란사건, 약칭 여순반란사건으로 확정되어 공식적으로 통용되었다.

문제는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명칭만 보고 여수 순천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고, 실제로 1980년대 중반까지 연좌제에 묶여 행정, 사법고시에 합격도 못하고, 여권이나 선원수첩도 안 나오는 등, 여러모로 피해를 보면서 참고 침묵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세월이 흘러 화신약국을 경영하는 문정인 여수문화원장은 문화원장으로서의 고유 업무 외에, 지역사회의 각종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여수청년회의소와 함께 시퍼런 노태우 정권 시대에 한국화약 이전과 여순반란사건의 명칭을 14연대 반란사건으로 변경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애향심과 대담함을 선보이면서, 여수문예회관에서 세미나도 개최하고, 1990여수문화 제5집 제14연대 반란편을 특집으로 발간하고, 저돌적으로 여수문화원에서 당시 전남동부지역에서 희생된 분들을 널리 알려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199712“50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자료수집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이라도 현장인들이 살아있을 때 기초 작업을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착수를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나 이것을 계기로 더 보완되기를 바라면서 우선 수집한 귀중한 자료를 모아 14연대반란50년결산집을 출판한다.”라고 발표하였다.

14연대 반란 50

반란군에 의한 광란의 시간

진압군에 의한 학살과 방화의 시간

그 이후 여수사람들은, 사람 많이 모이는데 가지 마라

바른 소리 하지 마라, 자식 교육 많이 시키지 마라

보고도 못 본 채, 알고도 모른 채,

꿀 먹은 벙어리, 눈 뜬 당다리 되었네! 라는 시를 남겼다.

<계속~>

[여수인터넷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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