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특별법 기획] 여순사건, 그때를 되돌아본다(2)
[여순사건 특별법 기획] 여순사건, 그때를 되돌아본다(2)
  • 김충석
  • 승인 2020.06.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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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3,5기 여수시장

 

3, 여수주둔 14연대 창설

미군정(美軍政)은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면, 소 양군의 철수에 대비하여, 일본군에서 압수해둔 무기를 가지고 1946년부터 경찰예비대로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를 모집하여 훈련하면서 준비하고 있었다.

미군정에서는 일본이 1943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어려워지자, 미국 군함들과 최후의 결전을 하려고 일본해군 항공기지로 만들고 있던 여수 신월리에 콘세트 막사를 더 많이 치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1948년 들어서면서 정부수립이 가시화되자, 미군은 철수에 대비하여 194854일 광주 주둔 4연대에서 차출된 1개 대대의 부대원들로 14연대를 창설하고, 수원 주둔 11연대, 마산 주둔 15연대도 같은 날 창설하였다.

14연대에 경비사관학교 3기생인 김지회와 홍순석 중위 등 좌익계 장교들과 지창수 등 40여 명의 하사관이 군기대(軍紀隊 헌병)의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익성향의 인물들로만 따로 뽑아 14연대로 보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전라남도 동부 6군에서 신 대한 국방군을 활발하게 모병(募兵)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를 전후하여 용진, 용진 어서 나가자,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에 사령, 결전 돌격 독립 전선에, 천하무적 우리 군대 누가 당 하랴, 보아라 휘날리는 태극 깃발을 천지를 진동하는 승리의 함성! /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태극기 걸어놓고 천세 만세 부르세,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 위한 군병 되기 소원입니다. / 인생에 목숨은 초로와 같고 이씨 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인생에 목숨은 초로와 같고, 신라에 화랑도 용감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남아 이십 대 장군 남이 장군이 남겨놓은 그 말씀 가슴 울리네, 청년 장군 그대의 위대하신 경, 젊은 피는 혈관에 살아있도다.’

이런 군가들이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면서, 일제의 통치를 벗어나 해방이 되고 새로운 나라가 탄생한다는 기대와 희망,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고취 시키는 군가에 매료되어, 청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입대하는 바람에, 각 지역의 연대병력을 순식간에 충원하였다.

14연대 막사가 있던 당시의 여수 신월리 (현재 한국화약 여수공장 터)
14연대 막사가 있던 당시의 여수 신월리 (현재 한국화약 여수공장 터)

<계속>

[여수인터넷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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